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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가난과 부재의 초상

by 토끼러버 2025. 9. 28.

김애란 작가의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는 2005년 발표 당시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한국 젊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 소설집은 독특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가난과 가족의 해체, 그리고 불안정한 청춘의 초상**을 그려냅니다. 특히 표제작을 포함한수록작들은 결핍과 부재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젊은 화자의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를 통해 아이러니하게 발랄한 생명력을 획득합니다. 이 서평은 『달려라, 아비!』가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학에서 갖는 의미와, 그 속에 담긴 깊은 사회적 통찰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1. 부재하는 아버지와 '결핍된 가족'의 미학

『달려라, 아비!』의 핵심 모티프는 **아버지의 부재**입니다. 표제작에서 화자의 아버지는 늘 꿈속에서만 달리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부재합니다. 이처럼 소설집 속 가족들은 경제적 궁핍뿐 아니라, 정서적, 물리적 결핍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결핍을 눈물이 나 신파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부재와 결핍의 공간을 화자의 **경쾌한 상상력과 기발한 유머**로 채워 넣습니다.

이 소설집의 인물들이 겪는 '부재'는 단순히 한 개인의 가족사가 아닙니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겪은 경제적 불안정성과 전통적인 가족 제도의 해체를 은유합니다.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는 어머니의 과도한 노동과 희생으로 메워지고, 화자는 그 상황을 담담하면서도 비범한 시선으로 관찰합니다. 작가는 이 시대 젊은 세대가 물려받은 **가난과 불안정성**을, '아버지가 떠나고 남겨진 자들'이라는 상징적인 형태로 제시합니다. 이는 독자들에게 단순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시대적 공통의 경험으로 읽히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미화되거나 원망되기보다,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애잔한 일상 속의 한 에피소드로 치환됩니다. 이러한 담담함 속의 비극성이 김애란 문학의 독특한 미학을 형성합니다.

2.  가난'과 '청춘'의 아이러니한 발랄함

소설집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가난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김애란의 인물들은 가난하지만, 그 가난에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이라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생존하며 **아이러니한 발랄함**을 유지합니다. 이는 특히 젊은 화자들의 시선에서 두드러집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그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가난을 묘사하는 데 있어 신선하고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좁은 방, 낡은 가구, 곰팡이 냄새 등 구체적인 일상의 풍경들이 섬세하게 그려지지만, 그 묘사는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대신, 젊은 세대가 공유하는 특유의 유머 감각과 냉소를 통해 가난을 하나의 **'생활 방식'** 또는 **'시대의 징후'**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함께, 고통을 극복하는 젊은 세대의 건강한 에너지를 느끼게 합니다. 작가는 가난을 '부끄러운 것'이 아닌, '자신을 이루는 일부'로 받아들이는 인물들을 통해 결핍이 반드시 절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역설합니다.

3. 도시 공간의 감각적 묘사와 서정성

『달려라, 아비!』는 또한 **도시 공간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서울의 낡은 빌라촌, 옥탑방, 지하방 등 소외된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 상태와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작가는 이러한 공간들을 젊은 화자의 시선으로 포착하여, 도시 생활의 소외감과 익명성을 서정적으로 표현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떠돌며, 정착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유목민적인 삶**의 형태는 불안정한 비정규직, 낮은 주거 안정성 등 2000년대 초반 한국 청년 세대가 겪었던 현실을 은유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삭막한 도시 풍경 속에서도 인물들 간의 **희미한 연대와 사랑**의 순간을 포착하여 따뜻한 서정성을 불어넣습니다. 부재와 해체를 경험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서투른 관계 맺음은, 이 소설집이 가진 가장 감동적인 부분 중 하나입니다. 결론적으로, 김애란의 이 단편집은 단순히 한 세대의 사회상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언어의 신선함과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한국 현대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중요한 성과입니다.

특히 작가 특유의 짧고 간결한 문장과 리듬감 있는 서술은 독자들을 빠르게 이야기에 몰입하게 합니다. 이는 자칫 무겁고 어두울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자들이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합니다. 『달려라, 아비!』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의 지형도를 바꾼 중요한 작품으로, 그 영향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