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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 공정, 책임, 의미

by 토끼러버 2026. 1. 19.

조던 피터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관련사진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짧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읽고 나면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이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는 무슨 뜻인지 쉽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이 문장은 단순한 상황 설명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가장 예민한 문제인 ‘공정함’에 대한 질문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먼저 온 사람의 권리를 당연하게 여기고, 나중에 온 사람은 덜 받아도 된다고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익숙한 상식을 뒤집는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 위에서 유지되는가를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묻는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평소 내가 얼마나 계산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내가 더 많이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짧은 이야기로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건드리며, 독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공정: 먼저 온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 사이의 불편한 질문

이 작품의 중심에는 ‘같은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설정이 놓여 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일했고, 어떤 사람은 늦게 와서 짧은 시간만 일했다. 그런데도 모두가 같은 몫을 받는다. 이 장면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불만이 먼저 올라왔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 더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 이 작품이 노리는 독자의 반응이다. 우리는 공정을 능력과 시간, 노력의 양으로만 계산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동일한 보상은 곧 불공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작품은 그 익숙한 기준을 뒤흔든다. 공정이란 단순히 많이 한 사람에게 많이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현실 사회에서 뒤처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쉽게 “네가 덜 노력했기 때문이야”라고 말해왔는지 떠올렸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공정이 숫자와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라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낸다. 공정은 차가운 정의가 아니라, 따뜻한 기준일 수 있다는 생각이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마음에 들어왔다.

책임: 누가 누구의 삶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가

이 작품에서 주인이 보이는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먼저 온 사람에게도,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똑같이 대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자비심만이 아니라, 자기 위치에 대한 분명한 책임 의식이 담겨 있다. 그는 고용한 사람들을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자기 결정으로 하루를 맡긴 존재로 인식한다. 그래서 그들의 하루가 헛되이 끝나지 않도록 책임지려 한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책임’이란 단어가 얼마나 무겁고 동시에 얼마나 드물게 실천되는지 느끼게 되었다. 현실에서 우리는 보통 각자도생을 당연하게 여긴다.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라”라는 말은 너무 쉽게 사용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말을 정면으로 의심한다. 정말로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존재들일까? 주인의 태도는, 인간은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책임을 나누며 버티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쉽게 무관심해졌는지, 그리고 누군가의 어려움 앞에서 얼마나 자주 눈을 돌려왔는지를 떠올렸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책임이란 의무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태도임을 조용히 말하고 있다.

의미: 계산을 넘어서는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

이 작품이 던지는 가장 깊은 질문은 “삶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이다. 우리는 흔히 성과, 시간, 노력, 결과로 삶의 가치를 재단한다. 하지만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그런 기준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중에 온 사람은 게으르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 상황 때문에 늦었을 수도 있다. 그가 늦게 왔다는 사실 하나로 그의 하루 전체가 덜 가치 있는 것이 되어야 할까? 이 작품은 그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읽으면서 나는 내 삶을 떠올렸다. 나 역시 누군가보다 뒤처졌다고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깎아내려 왔고, 남들보다 더 빨리 온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말한다. 삶의 의미는 도착 시간이 아니라, 그 하루를 어떻게 살아냈는가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은 서로의 하루에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계산의 언어가 아니라, 존엄의 언어로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결론적 해석: 나중에 와도 인간은 인간이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덮고 나면, 마음속에 오래 남는 문장이 바로 이 제목이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이 문장은 어떤 사람을 끝까지 배제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늦게 왔어도, 뒤처졌어도, 실패했어도, 인간은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 짧은 말속에 담겨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고 느꼈다. 이전에는 공정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으로 계산부터 떠올렸지만, 이제는 사람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누구에게까지 공정한가, 누구에게까지 책임을 느끼는가, 그리고 누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늦게 온 사람에게도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가, 뒤처진 사람에게도 몫을 나눌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읽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해서 나를 흔드는 질문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