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예술을 찬미하는 소설로 오독되기 쉬운 작품이지만, 실제로는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는 폭력과 고립, 그리고 인간성의 붕괴를 냉혹하게 응시하는 문제작이다. 이 소설은 천재 예술가의 일탈이나 자유로운 삶의 선택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적 충동이 인간의 삶과 윤리, 관계를 어떻게 잠식하고 파괴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작품 속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사회적 성공과 안락한 가정을 버리고 그림을 택하지만, 그 선택은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예속으로 이어진다. 『달과 6펜스』는 예술·욕망·자유라는 매혹적인 개념들이 실제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떤 잔혹한 얼굴을 드러내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이며, 독자에게 판단을 회피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불편한 고전이다.
예술
『달과 6펜스』에서 예술은 인간을 고양시키는 숭고한 가치가 아니다. 스트릭랜드에게 예술은 사회적 소통의 언어도, 자기표현의 수단도 아니다. 그것은 설명될 수 없으며, 설명을 요구받지 않는 절대적 충동이다. 그는 왜 그림을 그리는지 말하지 않으며, 그 이유를 묻는 질문 자체를 무의미하게 여긴다. 예술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그를 움직이게 하는 생리적 욕구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서머싯 몸은 예술을 이상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위험성을 전면에 드러낸다. 스트릭랜드의 예술은 주변 인간들의 삶을 철저히 소모한다. 그는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자신을 도운 이들의 희생을 당연한 대가처럼 받아들인다. 그의 예술이 위대할수록,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적 파괴는 더욱 선명해진다. 작가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위대한 예술은 인간적 윤리를 초월할 수 있는가. 예술적 성취가 타인의 삶을 파괴한 결과라면, 우리는 그 예술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달과 6펜스』는 예술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이 소설에서 예술은 빛나는 이상이 아니라, 인간을 시험하는 냉혹한 힘이다.
욕망
스트릭랜드의 욕망은 일반적인 성공 욕망이나 물질적 욕망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그는 명예를 원하지 않고, 인정받는 데에도 무관심하다. 심지어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남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욕망은 오직 내부에서 발생하며, 사회적 보상과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이러한 욕망은 순수해 보일 수 있지만, 바로 그 순수함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 욕망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조정되거나 제어되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이 사회적 규범과 윤리를 벗어날 때, 그것은 타인의 삶을 침범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지만, 그 희생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예술을 위한 부수적 비용처럼 취급한다. 서머싯 몸은 이 인물을 통해 “진정한 욕망”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쉽게 폭력의 언어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욕망이 진실하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된다면, 사회는 결국 강한 욕망을 가진 자에게만 유리한 구조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달과 6펜스』는 욕망을 해방의 언어로 소비하는 현대적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자유
스트릭랜드의 삶은 흔히 사회적 규범을 거부한 자유의 상징처럼 읽힌다. 그는 안정된 직업과 가정을 버리고, 가난과 고독을 감수하며 자신만의 길을 간다. 그러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자유는 점점 역설적인 형태를 띤다. 그는 사회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자신의 욕망에는 완전히 종속된 존재다. 그는 선택하지 않는다. 그는 숙고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욕망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뿐이다. 이때 자유는 자율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구속으로 변한다. 타히티에서의 삶은 문명으로부터 벗어난 해방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극단적인 고립의 공간이다. 그는 인간관계를 거의 맺지 않으며, 육체는 병들고 시력마저 상실한다. 그럼에도 그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이 장면은 예술적 숭고함의 절정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얼마나 철저히 소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서머싯 몸은 자유를 낭만화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가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지 못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삶을 지탱하는 모든 관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결론적 해석
『달과 6펜스』는 예술가의 성공담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윤리적 심문이다. 스트릭랜드는 위대한 예술가일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실패한 존재다. 이 두 사실은 작품 안에서 결코 화해되지 않는다. 서머싯 몸은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 가치가 인간의 삶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윤리적 공백을 끝까지 방치하지 않는다. 이 소설이 지금도 강력한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예술을 위해 타인의 삶이 희생될 때, 우리는 그것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달과 6펜스』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에게 질문을 되돌려준다. 당신이 바라보는 달은 무엇이며, 그 달을 위해 버리게 될 6펜스는 과연 사소한 대가에 불과한가. 이 질문을 끝까지 견디게 만든다는 점에서, 『달과 6펜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