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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의 '부활' : 죄의식, 구원, 사회 구조

by 토끼러버 2026. 1. 6.

레프 톨스토이의 '부활' 관련 사진

레프 톨스토이의 『부활』은 개인의 도덕적 각성에서 출발해 사회 제도 전체의 윤리적 파탄을 고발하는 사상적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 저지른 죄가 개인의 양심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구조와 제도를 통해 어떻게 확대되고 정당화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귀족 출신의 네흘류도프가 과거에 버린 여인 마슬로바와 재판정에서 재회하는 장면은,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 외면해 온 책임이 어떤 방식으로 현재를 덮쳐오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활』은 회개나 신앙 고백을 강조하는 종교 소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도화된 위선과 관습적 도덕을 날카롭게 해체하는 사회 비판 소설에 가깝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구원을 초월적 은총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과 선택의 문제로 재정의하며, 인간이 진정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감당해야 하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렇기에 『부활』은 개인의 양심 이야기이자, 인간 사회 전체를 향한 윤리적 질문으로 남는다.

죄의식의 각성: 과거의 책임이 현재를 파괴하는 순간

『부활』에서 네흘류도프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깨달음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과거를 무의식적으로 봉인한 채 살아온 인물이다. 젊은 시절 마슬로바를 유혹하고 버린 일은 그의 기억 속에서 불편한 그림자처럼 밀려나 있었고, 그는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이미 정리된 사건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배심원석에서 마주한 마슬로바의 모습은 그가 애써 외면해 온 책임을 현재형으로 불러낸다. 그녀의 몰락은 단순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그의 선택이 낳은 직접적인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네흘류도프가 느끼는 죄의식은 감상적인 후회나 자기 연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 전체가 도덕적 무책임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그는 법과 제도가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어왔지만, 그 법정에서조차 진실이 왜곡되고 인간이 쉽게 희생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죄의식은 그에게 단순한 심리적 고통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를 뒤흔드는 충격으로 작용한다. 톨스토이는 이 과정을 통해 죄를 깨닫는다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편한 경험인지를 강조하며, 진정한 변화는 바로 이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구원의 의미: 신앙이 아닌 실천으로서의 변화

『부활』에서 구원은 교회나 성직자의 권위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네흘류도프는 성경 구절을 읽고 종교적 감동을 느끼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신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톨스토이는 구원을 내면의 감동이나 신앙 고백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과 선택의 연속으로 제시한다. 네흘류도프는 마슬로바의 억울한 처지를 바로잡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고, 자신의 재산을 포기하며,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는 선택을 한다. 이 과정은 숭고한 희생이라기보다, 뒤늦게나마 인간으로서 책임을 지려는 고통스러운 실천에 가깝다. 중요한 점은 마슬로바가 그의 구원의 도구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네흘류도프의 회개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주체성을 회복해 나간다. 이는 구원이 누군가에 의해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 도덕적 각성이란 자기만족적인 선행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다시 조직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임을 강조한다. 『부활』에서 구원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실천의 방향성으로 남는다.

사회 구조 비판: 제도 속에 숨겨진 집단적 죄

『부활』은 개인의 도덕적 변화만을 다루는 작품이 아니다. 이 소설의 중요한 축은 법원, 교도소, 행정 관료제, 군사 제도 등 근대 사회의 핵심 제도들이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를 폭로하는 데 있다. 마슬로바가 억울한 판결을 받는 과정은 특정 인물의 악의가 아니라, 규칙과 절차에만 충실한 시스템의 무감각에서 비롯된다. 누구도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지만, 그 결과는 한 인간의 삶을 철저히 파괴한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 죄가 개인에게만 귀속되지 않고 사회 전체에 분산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법관은 법을 따랐을 뿐이고, 간수는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며, 관료는 규정을 집행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뿐’이라는 말들이 모여 인간을 짓누르는 거대한 폭력이 된다. 네흘류도프의 각성은 바로 이 구조적 죄를 인식하는 데서 의미를 갖는다. 그는 더 이상 개인적 속죄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제도 자체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부활』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비인간화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해부한다.

결론적 해석: 다시 태어난다는 것의 진짜 의미

『부활』의 결말은 독자가 기대하는 통속적인 구원 서사와는 거리가 멀다. 네흘류도프는 완전한 성인이 되지 않으며, 마슬로바의 삶 역시 이상적인 결말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 불완전함 속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는 ‘부활’의 의미가 드러난다. 부활이란 과거를 지우거나 죄에서 자유로워지는 상태가 아니라, 그 죄를 끝까지 인식하고 책임지며 살아가려는 태도의 변화다. 톨스토이는 인간이 완벽해질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인간이 자기기만을 멈추고, 사회가 강요한 편리한 도덕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을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부활』은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의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어떤 죄를 함께 짊어지고 있는가.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읽히는 이유는, 그 질문이 여전히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부활』은 인간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쉽게 약속하지 않지만, 최소한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는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