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노레 드 발자크의 『사촌 베트』는 질투와 소외가 인간을 어떻게 파괴적 존재로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19세기 프랑스 이야기가 아니라, 인정받지 못한 감정이 누적될 때 일어나는 내면의 왜곡을 추적하며, 현대 한국 사회의 경쟁 구조와 감정의 상업화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베트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상처받은 자가 언제 가해자로 전환되는지, 그 경계는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질투의 윤리: 인정받지 못한 존재의 왜곡된 욕망
『사촌 베트』를 읽으며 가장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질투라는 감정의 본질입니다. 베트의 질투는 단순한 시기심이 아니라, 오랜 시간 무시당하고 소외된 경험이 만들어낸 깊은 상처의 결과물입니다. 그녀는 못생기고 가난하며, 가족 안에서조차 부차적인 존재로 취급받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밀려난 고립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기에, 그녀의 질투는 "왜 나는 늘 선택받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이 수십 년간 누적되어 만들어진 왜곡된 욕망에 가깝습니다. 이 지점에서 베트에게 느껴지는 연민은 분명합니다. 그녀는 악해서가 아니라 끝없이 무시당했기 때문에 삐뚤어진 인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선택에 대한 비판도 필요합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반드시 가해자가 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베트는 자신의 불행을 스스로의 삶에서 풀어내지 않고,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보상받으려 합니다. 그녀의 복수는 정당화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합니다. "상처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인생을 망가뜨릴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베트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녀의 행동까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공감과 비판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 복잡한 감정 구조야말로 『사촌 베트』가 단순한 권선징악 이야기가 아닌 이유입니다. 발자크는 베트를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두운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독자로 하여금 불편한 자기 성찰을 요구합니다.
관계의 계산화: 사랑과 가족마저 이익 구조로 전락하는 세계
『사촌 베트』 속 인간관계는 대부분 따뜻한 정서보다는 계산과 이해관계로 움직입니다.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투자이며, 친척 관계조차 감정이 아니라 이득의 논리로 유지됩니다. 이 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 사회와 닮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조건, 배경, 쓸모를 먼저 따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베트가 주변 인물들을 조종하고 이용하는 방식은 잔인하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가 이미 그런 구조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처럼 보입니다. 발자크는 사람들의 감정을 너무도 쉽게 거래하고, 사랑을 계약처럼 취급하는 사회를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이 장면들은 독자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자기 점검의 계기가 됩니다. "우리는 정말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고 있는가?" 혹시 나 역시 누군가를 만날 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쓸모 있는 사람'인지부터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관계를 감정이 아니라 효율로만 계산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관계의 계산화는 더욱 심화되어 있습니다.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 성과 중심의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점점 서로를 도구화하고 있습니다. 베트의 세계가 19세기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실로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이 소설은 관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타인과 연결되어야 하는지 성찰하게 만듭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베트라는 인물의 이중적 위치
베트를 단순한 악녀로 읽어버리면 이 작품은 너무 평면적으로 끝나버립니다. 오히려 베트가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이중적 위치에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무서운 부분입니다. 그녀는 분명 억압받고 무시당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스스로 그 상처를 증오로 키워 결국 타인을 해치는 선택을 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상처를 복수로 바꾸기 시작하는가?" 베트는 어느 순간부터 불행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불행을 유통시키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겨납니다. 만약 베트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면, 그녀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인간은 결국 자기 성향대로 흘러가게 되는 존재일까요? 발자크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도덕 이야기라기보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실험처럼 느껴집니다. 베트는 특별한 악인이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조건이 다르고 인정받지 못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 역시 쉽게 베트의 방향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을 더욱 섬뜩하게 만듭니다. 사용자의 비평처럼, 베트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순간이 과연 있었는지, 그녀의 파괴를 개인의 책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입니다. 사회와 가족이 이미 그녀를 밀어냈다면, 그녀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웠을까요? 이 질문은 개인의 책임과 사회적 구조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사촌 베트』를 덮고 나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악을 멀리 있는 이야기로 만들지 않고, 질투, 소외, 인정 욕구라는 아주 일상적인 감정에서 출발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베트는 괴물이 아니라 충분히 우리가 될 수 있는 인물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문학 감상이 아니라 자기 점검의 도구가 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감정을 키우고 있나요? 당신의 상처는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나요, 아니면 누군가를 미워하게 만들고 있나요? 『사촌 베트』는 그 질문을 아주 오래 남기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