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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페스트' 소설 리뷰 – 부조리, 연대, 윤리

by 토끼러버 2026. 1. 20.

알베르 카뮈 '페스트' 관련 사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전염병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통해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를 정면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 나는 단순히 병이 퍼지는 도시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읽을수록 이 작품이 다루는 것은 질병이 아니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세계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임을 깨닫게 된다. 『페스트』는 부조리한 현실,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연대,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는 윤리의 문제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시험한다. 오랑이라는 폐쇄된 도시 안에서 인물들은 공포, 무력감, 체념, 분노를 겪지만,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침묵하지 않고 행동을 선택한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위기의 시대에 과연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계속해서 묻게 되었다. 『페스트』는 교훈을 설교하지 않지만, 독자의 삶을 향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부조리: 설명되지 않는 재난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

『페스트』에서 가장 먼저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질병이 퍼지는 방식이다. 이유도, 경고도 없이 갑자기 쥐들이 죽어 나가고, 곧이어 사람들이 병에 걸린다. 이 전개는 매우 건조하고 담담하게 서술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가 담겨 있다. 우리는 평소에 세상이 합리적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노력하면 보상이 있고, 조심하면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페스트』 속 세계는 그런 믿음을 철저히 배신한다. 병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누구를 가리지 않으며,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가 드러난다. 인간은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세계는 의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랑의 시민들 역시 처음에는 이 사태가 곧 끝날 것이라 믿고, 일시적인 사건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상황이 길어질수록 그들은 점점 무력해지고, 삶의 방향을 잃는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현실의 재난과 팬데믹을 떠올렸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페스트』는 우리가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보여주며, 그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혼란과 공포를 아주 정직하게 드러낸다.

연대: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깨달음

『페스트』가 단순히 절망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연대’라는 선택이 있기 때문이다. 리유, 타루, 랑베르 같은 인물들은 각자의 이유로 병과 싸운다. 처음에는 개인적 동기로 출발하지만, 점점 그들은 이 싸움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리유는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고, 타루는 자원 방역대를 조직한다. 이들의 행동은 영웅적이라기보다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들은 세계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앞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다. 이 장면들을 읽으면서 나는 ‘연대’라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느꼈다. 연대는 감정적인 동정이 아니라, 행동을 동반한 책임이다. 함께 위험을 감수하고, 함께 실패할 가능성을 끌어안는 것이다. 『페스트』 속 인물들은 서로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고통을 혼자 감당하게 두지는 않는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타인의 불행 앞에서 얼마나 쉽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물러나왔는지를 떠올렸다. 『페스트』는 연대란 선택이며, 그 선택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윤리: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

『페스트』에서 윤리는 규칙이나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제시된다. 리유는 종교적 구원이나 거창한 이념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의사는 치료한다”는 자기 역할을 끝까지 수행할 뿐이다. 이 태도는 매우 소박하지만, 동시에 가장 강인하다. 그는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카뮈가 말하는 윤리의 핵심이다. 세계가 무의미하다고 해서 인간까지 무의미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윤리가 얼마나 외로운 선택인지 느꼈다.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 싸움, 끝이 보이지 않는 노력, 성과가 확실하지 않은 행동을 계속하는 것. 그것이 바로 『페스트』가 말하는 윤리다. 사람들은 쉽게 “어차피 달라질 게 없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리유는 달라지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는다. 이 태도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윤리는 성공을 약속받고 하는 일이 아니라, 실패를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페스트』는 조용히 보여준다.

결론적 해석: 부조리한 세계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

『페스트』를 덮고 나면 마음에 남는 것은 질병의 공포보다도,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소설은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더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세계를 바꿀 수 없을지 몰라도, 세계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페스트』의 인물들은 그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절망 속에서도 연대를 선택하고, 무력감 속에서도 책임을 선택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나는 위기의 시대에 어떤 인간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페스트』는 독자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에 『페스트』는 여전히 살아 있는 고전이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말한다. 세상이 부조리해도, 인간까지 부조리해질 필요는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