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작가의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는 한국 사회의 불안한 단면과 그 속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소시민들의 초상을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아이러니로 그려냅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루저 문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삶의 예견된 불행 앞에서 절망하기보다는 능청스럽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깊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이 소설집은 단순히 '루저'의 이야기를 담는 것을 넘어,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한 숙명적인 좌절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냉철하게 기록하는 중요한 문학적 성과입니다. 본 서평은 이기호 문학의 핵심적 특징인 **화술의 독특성**과 **실패를 통한 미학적 성취**를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1. '내 이럴 줄 알았지'의 서술적 아이러니
이 소설집의 제목이자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는 **'예견된 실패'의 아이러니**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늘 뭔가를 간절히 원하고 시도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이미 실패의 궤적을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독자는 물론 화자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인물들을 비극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능글맞고 초연한 태도**를 취하게 만듭니다. 이기호 소설의 인물들은 대개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로, 그들의 실패는 개인적인 무능함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결함과 환경적 제약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IMF 사태 이후 더욱 심화된 비정규직, 불안정한 고용, 주거 문제 등 현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작가는 이처럼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경쾌한 리듬과 일상적인 어투**를 유지합니다. 이는 독자가 인물의 고통에 직접적으로 몰입하는 것을 막고, 한 걸음 물러서서 그들의 상황을 관찰하게 만듭니다. 이 거리 두기는 역설적으로 인물의 처지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자기 인식은, 인물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나 깊은 통찰과 체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이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불안과 맞닿아 있습니다.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자리걸음이거나 후퇴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현대인의 심리를 작가는 탁월한 화술로 포착해 냅니다. 이는 마치 광대가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것처럼, 그들의 실패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삶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의도적인 연출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2. 이기호식 블랙 코미디와 구어체의 힘
이기호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화술**입니다. 소설 속 화자는 마치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고 비밀을 공유하듯이, 친근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솔직한 **구어체**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화법은 소설의 형식적인 장벽을 허물고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합니다. 화자의 수다스럽고 능청맞은 어조 속에는 비수 같은 **블랙 코미디**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물이 극한의 비참함에 처했을 때, 화자는 그 상황을 가장 평범하고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일처럼 묘사합니다. 이 유머는 고통을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는 인물의 자조(自嘲)적인 방어 기제이자, 현실의 부조리함을 폭로하는 작가의 비판적 도구입니다. 가령, 가난 때문에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일들을 무덤덤하게 서술함으로써, 독자는 그 상황 자체의 황당함과 부조리함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이기호 작가는 이 독특한 화술을 통해, 사회의 약자들이 겪는 고통을 단순히 동정의 대상이 아닌, **날카로운 사회 비평의 주체**로 끌어올립니다. 이 구어체의 힘은 독자와 작가, 인물 간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면서도 명확한 윤리적, 사회적 판단을 가능하게 합니다.
3. '사소한' 삶을 통해 발견하는 인간적 연대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대개 거창한 성공이나 혁명을 꿈꾸지 않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 맞춰져 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거나, 밀린 월세를 내거나, 혹은 단순히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생존 문제입니다. 작가는 이러한 **사소함 속에서 인간적인 연대와 희망의 찰나**를 포착해 냅니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완벽한 구원자가 되어주지 못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실패와 비루함을 묵인하고, 때로는 아주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공존합니다. 이는 화려한 성공 서사가 지배하는 주류 사회의 가치관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실패를 통해 완성되는 인간적인 미덕**입니다. 이기호 작가는 인물들이 겪는 어둠과 절망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하고 진실된 순간들을 조명합니다. 결국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는 한때 사회의 주변인으로 여겨졌던 이들의 삶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비추고, 독자들에게 그들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다는 깊은 성찰을 던지는, 중요한 문학적 보고서입니다. 이 소설집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의 가치, 그리고 실패를 통해 배우는 삶의 진실을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