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주제, 인물, 서사의 구조

by 토끼러버 2025. 9. 1.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단순히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권력 다툼을 그린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어린 학생들의 관계 속에 은폐된 권력 구조를 정밀하게 드러내며, 권력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순응하고 타협하는지, 또는 저항하다가 패배하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한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형성과 그에 따른 억압, 다수의 침묵과 방관, 소수의 저항은 곧 한국 사회가 겪어온 정치적 풍경을 압축한 은유로 읽힌다. 소설 속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는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실과도 같다. 본 리뷰에서는 주제 의식, 인물 분석, 서사 구조, 문체적 특징, 그리고 작품이 오늘의 독자에게 던지는 교훈을 차례대로 살펴본다.

권력의 축소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한 소년이 전학을 오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특이한 교실의 권력 구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한병태’는 처음에는 새 학급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엄석대’의 권력 앞에서 당당히 맞서지만, 점차 고립되고 결국 체제 안으로 순응하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러한 이야기는 단순한 아동 소설적 사건 묘사로 끝나지 않는다. 소설 속 교실은 한국 사회 전체를 상징하는 축소판이며, 엄석대는 독재 권력자의 전형, 그리고 주변 학생들은 권력에 순응하거나 방관하는 대중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론에서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특정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막 꽃피던 시기에 발표된 이 소설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교실이라는 단순한 배경은 오히려 권력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독자는 어린 학생들의 행동과 선택을 통해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며, 인간이 그것에 어떻게 길들여지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따라서 서론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단순히 성장소설로 한정해서 읽을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권력 구조를 비판적으로 탐구한 정치적 알레고리로 이해해야 한다.

인물과 권력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단연 ‘엄석대’다. 그는 또래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교실을 완벽하게 지배한다. 그의 권력은 단순한 힘의 우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과 조직 운영 능력에서 나온다. 그는 규칙을 정하고, 보상과 처벌을 분명히 하며, 교사에게는 충성을 연기하면서 교실 내부를 독재적으로 장악한다. 그의 모습은 작은 권력자가 어떻게 대중을 지배하는지를 보여주는 모형이다. 주인공 ‘한병태’는 이 권력에 맞서 싸우려 하지만 곧 고립되고 좌절한다. 그는 정의감과 저항의 지를 갖추고 있었으나, 다수의 학생들이 엄석대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며 점차 자신의 저항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결국 그는 타협과 순응을 선택하고, 권력 구조 속에서 자신 역시 부당함에 눈을 감는다. 병태의 변화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권력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타협하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학생들은 권력에 순응하는 대중의 모습을 상징한다. 일부는 적극적으로 엄석대의 체제를 지지하며 이익을 얻고, 일부는 침묵 속에서 방관한다. 이는 권력의 억압이 단순히 권력자의 힘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무기력한 동조와 외면에 의해 공고해진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결국 권력은 지배자 혼자만의 산물이 아니라, 지배받는 이들의 협조와 침묵 속에서 유지되는 구조임을 소설은 보여준다.

서사의 전개

소설의 서사는 전학생 병태의 시선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처음에는 엄석대의 체제를 불합리하게 여기고 맞서지만, 차츰 무력감을 느끼고 결국 순응하는 과정이 서사의 큰 줄기다. 이 과정은 권력에 대한 저항과 타협의 드라마일 뿐 아니라, 인간이 사회적 구조 속에서 어떻게 길들여지는지를 보여주는 심리적 탐구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소설 속 교사가 엄석대의 권력을 전혀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사는 오히려 엄석대의 충성심에 만족하며 그의 권력을 묵인한다. 이는 사회 제도나 권력이 부패할 때, 그것을 감시하고 제어해야 할 시스템이 오히려 권력을 방조하는 상황을 상징한다. 따라서 교사는 권력에 대한 제도적 견제가 실패했을 때 벌어지는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소설 후반부, 교체된 새로운 담임교사가 엄석대 체제를 무너뜨리면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그러나 이때 병태는 이미 권력에 순응한 경험을 통해 변질된 자신을 마주한다. 권력이 무너진 후에도, 병태는 자신이 이미 그 권력의 일부가 되어 버렸음을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단순히 권력자의 몰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순응한 개인의 내면적 상처를 드러내며 더 큰 울림을 남긴다.

문체와 상징

이문열의 문체는 사실적이고 담담하다. 그는 어린 시절의 교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묘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차분하고 절제된 문체 속에서 권력의 억압과 인간 심리의 변화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특히 교실이라는 평범한 공간을 권력의 축소판으로 묘사하는 방식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소설 속 교실은 한국 사회 전체의 축소판이다. 엄석대의 권력은 권위주의 정치의 은유이고, 학생들의 순응은 대중의 무기력과 타협을 보여준다. 교사의 무능은 제도의 부재와 방관을 상징하며, 결국 민주주의가 자리잡지 못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라, 정치적 알레고리이자 사회 비판적 소설로 읽힌다.

오늘의 교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주제 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은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하며,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다. 오늘의 사회에서도 작은 조직이나 공동체 안에서 엄석대와 같은 권력 구조가 재현될 수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권력의 본질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 내면의 나약함을 직시하게 만든다. 병태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권력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보편적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는 이 소설을 통해 권력의 억압이 단순히 지배자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순응과 침묵 속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의 독자가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를 반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성찰을 얻기 위함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권력과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은 작품으로,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여전히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