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2021년에 출간된 이후, 깊은 감정의 울림과 날카로운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제주 4·3 사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인간 개개인의 상처와 애도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단순한 역사소설에 머무르지 않고, 사적인 서사와 공적인 기억을 연결하는 ‘기억 문학’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번 글에서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핵심 내용 요약, 주요 인물 분석, 그리고 한강 특유의 문체적 특징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리뷰를 제공하고자 한다.
내용요약
『작별하지 않는다』는 주인공 경하와 인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인선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면서도, 자신이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모호하고도 어두운 가족사의 퍼즐을 맞춰가고 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가 제주 4·3 사건 당시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점차 역사적 진실로 깊숙이 파고든다. 경하는 인선의 오랜 친구이자 서사를 함께 짊어지는 인물로, 독자 입장에서는 인선을 대신해 역사의 진실을 추적하는 역할을 한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전개된다. 인선의 어머니가 말기 암 선고를 받자, 그녀는 어머니의 고향 제주로 향한다. 이 여정 속에서 그녀는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물들—제주의 노인들, 생존자들, 그리고 기록자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4·3의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이 오늘의 인선과 경하에게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인선이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을 직접 확인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명확한 결말이나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빈자리를 통해 독자가 질문하게 만든다. 우리는 과거와 어떻게 작별할 것인가, 또는 작별하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은 소설의 제목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곧, 기억하겠다는 다짐이며, 망각의 유혹을 거부하는 자세다.
인물분석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중심에는 인선과 경하가 있다. 이 둘은 같은 여성으로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진실을 탐구한다. 인선은 직접적인 피해자의 자식으로서, 역사적 고통이 혈연을 통해 몸으로 전해진 인물이다. 그녀는 겉으로는 냉정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해소되지 않은 감정과 질문이 응어리처럼 쌓여 있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와의 관계는 단순한 가족관계를 넘어, ‘기억의 전달자’라는 상징적인 위치로까지 확장된다. 경하는 인선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중심인물이다. 그녀는 소설 속에서 독자의 시선을 대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선의 삶과 가족사를 외부에서 지켜보며 함께 동행하는 그녀는, 독자가 인선의 고통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통로 역할을 한다. 한강은 이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 ‘기억의 연대’와 ‘공감의 확장’을 시도한다. 단지 피해자 당사자가 아닌 타인도, 그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며, 그것이 기억을 지속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또한 인선의 어머니라는 인물도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말을 아끼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오히려 그 침묵을 통해 더 큰 메시지를 전한다. 그녀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 시대의 여성들이 겪었던 억압과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간신히 입을 열고 남긴 진술은, 한 개인의 고백이자 시대의 증언으로 읽힌다. 소설 속 조연들도 그 의미가 깊다. 기록보존소의 직원, 생존자 노인, 마을 주민 등은 각각의 방식으로 ‘기억의 조각’을 품고 있으며, 그것이 하나의 서사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작별하지 않는다』는 개별 인물들의 내면과 관계를 통해 거대한 역사의 파편들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문체특징
한강의 문체는 정제된 언어와 시적인 감수성으로 유명하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이러한 문체적 특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문장을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침묵과 여백을 통해 의미를 전달한다. 독자는 때로 문장과 문장 사이의 정적에서 더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절제된 서술은 작품 전체에 비극성과 진중함을 부여한다. 또한 한강은 반복과 단어 선택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조절한다. 예컨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말하지 않는 상처’, ‘기억의 파편’ 같은 표현은 작품 전체에서 여러 번 반복되며, 독자의 정서에 천천히 침투한다. 이는 독자가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서사와 동일화되게 만든다. 한강은 시적 문체와 극사실주의를 오가는 독특한 균형을 유지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인물의 내면을 극도로 섬세하게 묘사하다가도, 다음 장면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건조하게 제시한다. 이 대비는 오히려 더 큰 충격과 몰입을 만들어낸다. 또한 자연물의 이미지—눈, 바람, 나무, 바다 등—를 통해 감정의 상태를 메타포처럼 보여주는 방식도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작별하지 않는다』는 문체 자체가 메시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독자는 단어 하나하나에서 무게를 느끼며, 쉽게 넘길 수 없는 감정의 층을 마주하게 된다. 한강의 문체는 독자가 ‘기억’이라는 주제를 더 깊이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도록 만든다.
결론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역사적 진실에 침묵하지 않으며, 문학이 어떻게 기억의 통로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한 읽기가 아니라, 감정과 사유를 요구하는 독서 경험이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한국문학의 깊이를 체험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