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개인적 상실과 사회적 재난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출발한 깊은 성찰의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그 비극을 은유적이고도 섬세한 방식으로 문학화하며 집단적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치유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상실, 애도와 기억의 윤리를 섬세하게 풀어내며, 단지 한 개인의 서사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시키는 힘을 지닌 이 작품은 현대 한국문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글에서는 『작별하지 않는다』가 다루는 트라우마의 본질, 기억의 문학으로서의 기능, 그리고 문학이 가질 수 있는 치유의 언어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트라우마를 언어로 옮긴다는 것의 의미
트라우마는 경험한 이들에게 언어 이전의 충격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상처이자 흔적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언어화되지 못한 고통’을 담아내기 위해 시작된 작품입니다. 주인공 경하와 인선은 1980년 광주에서부터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고통의 장면과 연결되어 있으며, 소설은 이들의 기억과 상처를 따라갑니다. 한강은 트라우마를 직접 묘사하는 대신, 침묵과 여백을 통해 그 깊이를 전달합니다. 예컨대, 물에 잠긴 아이들, 사라진 가족, 무언가를 기록하지 않으면 망각된다는 절박한 감정은 소설 전체를 감싸는 정서입니다. 작가는 상처를 드러내기보다, 독자 스스로 그 상처의 모양을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이것은 고통을 소비하지 않고, 존중하는 문학적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트라우마의 집단적 성격을 강조합니다. 특정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겪었고 함께 기억해야 할 고통으로 제시됩니다. 특히 실종된 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단지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실제적인 애도이자 저항의 언어로 기능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망각에 대한 윤리적 저항입니다. 트라우마를 문학으로 풀어내는 일은 곧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고통의 흔적을 현실로 소환하는 행위입니다.
기억의 문학으로서의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의 작품 세계는 항상 기억과 망각의 경계 위에 놓여 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현재에 남아 있는 과거의 파편들을 수거하며, 기억이라는 실체 없는 물질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경하는 인선이 사라진 후, 그를 찾기 위한 여정을 통해 자신이 잊고 있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여정은 단순한 실종자 수색이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입니다.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기록하거나 재현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기억하는 이들의 감정, 말의 흔적, 몸의 기억을 통해 그 사건의 실체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문학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며, 독자에게 더 깊은 공감을 유도합니다. 기억이란 단지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윤리의 문제이며, 망각은 종종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한강은 망각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기억의 문학’을 씁니다. 이 소설에서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책무이며, 잊지 않는다는 것은 곧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닌, “기억하려 한다”는 태도에서 문학적 겸손함과 정직함이 드러납니다. 이는 독자에게 직접적인 명령을 내리기보다는, 함께 기억하는 주체로 초대하는 문학적 전략입니다.『작별하지 않는다』는 현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지 않고, 상징과 구조를 통해 그 아픔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컨대 ‘물’이라는 상징은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감정의 깊이와 무의식의 공간을 상징하는 이중성을 지니며, 이러한 상징적 장치는 기억의 불완전함과 인간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포착하는 데 기여합니다. 이처럼 기억을 기록하는 방식으로서의 문학은 역사와 개인의 경계를 넘어서며, 잊히지 않아야 할 것들에 대한 증언으로 자리 잡습니다.
치유의 언어로서 문학의 가능성
『작별하지 않는다』는 고통의 서사를 통해 독자에게 직접적인 치유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과 상실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문학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치유는 ‘공감’과 ‘인정’ 임을 보여줍니다. 한강은 이 소설을 통해 상처를 덮기보다는 그것을 들여다보고, 함께 응시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애도와 수용의 과정을 존중하는 문학의 태도입니다. 치유의 언어는 때로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학은 불완전한 언어를 통해서라도 고통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소설 속 경하의 여정은 외면했던 감정과 기억을 하나씩 되짚어가는 과정이며, 이는 독자가 자신 안의 상처를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처럼 『작별하지 않는다』는 독자 각자의 삶에서 소외되고 잊힌 감정을 일깨우고, 고통을 타인과 나눌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또한, 이 작품은 치유가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되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끝내 찾지 못한 인선, 남겨진 이들의 불완전한 애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은 치유가 ‘완성’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일’ 임을 시사합니다. 이는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위로이며, 우리가 고통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방식입니다. 문학은 어떤 사건에 대한 진실을 제공하기보다는, 그 진실을 둘러싼 감정의 복잡성을 존중합니다. 한강은 서정적이고도 절제된 문체로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위한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자리는 고통을 말하는 이와 그것을 들어주는 이가 만나는 장소이며, 문학이 치유의 언어가 되는 결정적인 지점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만남의 가능성을 문학으로 실현한 작품입니다.
결론
『작별하지 않는다』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고통을 기록하고, 함께 견뎌야 할 슬픔을 문학의 언어로 풀어낸 수작입니다. 트라우마를 외면하지 않고 응시하며, 기억의 의미를 되새기고, 문학이 제공할 수 있는 진정한 치유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단지 한 권의 소설을 넘어, 사회적 애도의 공간이자 감정의 연대를 이끄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 글을 통해 당신의 내면에도 기억의 조각이 살아나길 바라며,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작별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