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의 단편집 『덧니가 보고 싶어』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기발한 상상력과 미스터리**를 능숙하게 직조해 넣은 작품입니다. 이 소설집은 독자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독특한 세계로 초대하며, 그 안에서 상처받기 쉬운 존재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연대하는 과정을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냅니다. 작가 특유의 밝고 경쾌한 문체 뒤에는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고독에 대한 깊은 성찰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서평은 『덧니가 보고 싶어』가 한국 현대 문학, 특히 **'친절함의 윤리'**를 정립한 문학으로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본질을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1. 일상에 잠입한 기묘함: '낯설게 하기'의 미학
정세랑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일상의 풍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안에 비현실적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능력**입니다. 『덧니가 보고 싶어』 역시 이러한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 정교하게 발휘됩니다. 여기서 SF적 상상력이나 판타지 요소는 현실의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러시아 형식주의에서 말하는 **'낯설게 하기(Estrangement)'**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즉, 우리가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현실의 모순이나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부각해, 독자들이 익숙한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작가는 기묘한 존재나 현상을 통해 독자들에게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이상하고 다채로운 비밀을 품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도, 그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과 감정에 깊이 공감하게 만듭니다. 이 소설집에서 '이상한 일'은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곧 **'일상의 일부'**가 됩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획일화된 기준과 경쟁 논리에 의해 상상력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작가 나름의 문학적 저항을 보여줍니다. 독자는 비현실적 사건들을 따라가면서 현실의 경직된 사고방식을 버리고, 세상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도록 권유받습니다. 이는 작가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는 가장 영리하고 효과적인 방법론입니다.
2. 상처 입은 존재들의 '윤리적 연대'
정세랑 문학의 핵심 주제는 **'친절함'과 '연대'**입니다. 『덧니가 보고 싶어』의 주인공들은 대개 세상 속에서 작고, 소외되었거나, 혹은 특별한 이유로 상처를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별다른 조건 없이 서로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밉니다. 이러한 **'선량함'**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윤리적 자세이자, 작가가 제시하는 대안적 삶의 방식**입니다. 이 소설집에서 연대는 거대한 이념이나 투쟁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작은 친절과 이해의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서로의 비밀을 묵인해 주거나, 상대방의 기이한 습관을 존중해 주거나, 혹은 불필요한 간섭 대신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행위 자체가 연대가 됩니다. 작가는 이러한 소박하지만 진실된 연대를 통해, 무한 경쟁과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적 가치를 역설합니다. 작가의 시선은 상처 입은 인물들의 아픔을 포착하면서도, 그 아픔을 치유하는 힘이 바로 **타인과의 따뜻한 연결**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선량함의 미학'은 정세랑 소설이 독자들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이자 희망의 메시지이며, 이는 폭력적이거나 배타적인 세계에 대한 가장 부드럽고 강력한 저항의 방식이 됩니다.
3. 여성 서사의 확장과 현실 비판의 날카로움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 인물들은 기존 남성 중심 서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영역, 예를 들어 여성들의 섬세한 감정적 교류, 직장 내 미묘한 성차별, 혹은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부당한 기대치 등을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작가는 여성 인물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그들의 **주체적인 삶과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겉으로는 밝고 경쾌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는 한국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폭력과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숨어 있습니다. 특히 여성 인물들이 겪는 불합리한 상황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소외는 비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작가는 단순히 현실을 고발하는 방식 대신,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현실의 문제를 비틀고 희화화함으로써, 독자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사회 비판에 참여하도록 유도합니다. 이처럼 『덧니가 보고 싶어』는 환상적인 이야기 구조를 통해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사회적 질문을 던지는, 독특하고 의미 있는 단편집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세랑 작가는 이 소설집을 통해 한국 문단에 새로운 미덕, 즉 **'상상력을 통한 현실 개혁'**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