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 사회 소설이다. 이 작품은 한 노인의 비극적인 몰락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 핵심에는 개인의 불행을 넘어선 구조적 문제가 놓여 있다. 발자크는 파리라는 공간을 통해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 계급이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논리,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소진되는지를 냉정하게 묘사한다. 『고리오 영감』을 오늘 다시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현재 사회의 얼굴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던지며, 지금도 여전히 날카로운 현실감을 유지한다.
욕망
『고리오 영감』에서 욕망은 단순한 개인적 탐욕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고리오 영감의 삶을 지배하는 욕망은 부나 명예가 아니라 두 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과 삶의 에너지를 딸들에게 쏟아붓고, 그 대가로 사랑과 인정이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욕망은 순수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파괴적인 방향으로 작용한다. 딸들은 아버지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결국 그를 철저히 소외시킨다. 발자크는 이 과정을 통해 욕망이 반드시 이기적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고리오의 욕망은 헌신과 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사회적 가치 체계와 결합될 때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드러낸다. 딸들의 욕망 역시 개인적 사치의 문제가 아니라, 상류 사회에 속하고자 하는 강박에서 비롯된다. 욕망은 각 인물의 선택을 이끄는 원동력이자,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며, 발자크는 이를 통해 근대 사회에서 욕망이 통제되지 않을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냉혹하게 제시한다.
계급
『고리오 영감』의 세계에서 계급은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파리는 계급 이동의 가능성을 약속하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서열과 배제가 작동하는 사회다. 하숙집이라는 공간에 모인 인물들은 각기 다른 계급적 위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차이는 언어, 태도, 인간관계 전반에 스며든다. 고리오 영감이 점점 초라한 하숙방으로 밀려나는 과정은 단순한 경제적 몰락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추락을 의미한다. 발자크는 특히 계급이 인간의 도덕적 판단마저 변화시키는 방식을 강조한다. 상류 사회에 진입한 딸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부끄러운 과거로 인식하고, 그의 고통을 외면한다. 이때 문제는 개인의 비정함이 아니라, 계급 사회가 요구하는 태도 그 자체다.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정과 윤리를 희생해야 하며, 인간관계조차 계산의 대상이 된다. 『고리오 영감』은 계급이 인간을 나누는 기준일 뿐만 아니라, 인간다움을 갉아먹는 구조임을 폭로한다.
인간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이다. 고리오 영감은 사회적으로 실패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의 삶에는 분명한 인간적 진실이 담겨 있다. 그는 끝까지 딸들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희생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숭고하게 보이면서도 동시에 처절하다. 발자크는 고리오를 이상화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통해 사회적 성공과 인간적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들은 점점 인간성을 상실해 간다. 계산된 관계, 이해관계 중심의 선택,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은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조건처럼 제시된다. 『고리오 영감』은 인간이 사회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보여주며, 인간다움이란 타고나는 성질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태도임을 암시한다. 발자크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묻는다. 성공한 인간과 인간다운 인간 중,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결론
『고리오 영감』의 결말은 극적인 반전이나 구원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고리오 영감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장례식에는 딸들 대신 형식적인 조문객만이 남는다. 이 장면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가 어떤 인간을 기억하고 어떤 인간을 쉽게 잊어버리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리오의 죽음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욕망과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발생한 결과처럼 제시된다. 발자크는 이 결말을 통해 독자에게 연민보다 냉정한 인식을 요구한다. 『고리오 영감』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는, 이 작품이 특정 시대의 도덕적 타락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은 여전히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며, 계급과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가족 관계조차 이해관계와 효율의 논리로 재편되는 현실 속에서, 고리오 영감의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로 읽힌다. 그의 희생은 숭고하면서도 동시에 무력하며, 바로 그 모순 속에서 이 작품의 비극성이 완성된다. 결국 『고리오 영감』은 독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인간은 어디까지 희생해야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사회적 성공을 위해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선택은 과연 정당한가. 발자크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한 노인의 몰락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를 끝까지 응시하게 만든다. 『고리오 영감』이 고전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이 작품이 인간을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사회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