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 혁명, 폭력, 정의

by 토끼러버 2025. 12. 29.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관련 사진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단순한 혁명 서사가 아닌 인간과 사회, 정의의 본질을 묻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런던과 파리라는 두 도시를 대비시키며, 겉으로는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사회와 분노와 폭력이 폭발하는 사회가 어떻게 동일한 구조적 불평등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드러낸다. 디킨스는 혁명을 미화하지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대신 혁명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조건과 그 이후에 나타난 폭력의 자기 증식 과정을 차분하면서도 냉정하게 묘사한다. 『두 도시 이야기』는 혁명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는지, 혹은 또 다른 억압을 낳는 과정으로 전락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독자에게 감정적 동조가 아닌 사유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혁명 : 발생 조건과 필연성

『두 도시 이야기』에서 프랑스혁명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된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 존엄의 파괴가 폭발한 결과로 제시된다. 디킨스는 귀족 계급이 민중에게 가한 구조적 폭력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혁명이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필연적 귀결이었음을 강조한다. 프랑스 사회에서 귀족은 법 위에 군림하며 생명과 노동을 마음대로 착취했고, 민중은 제도적으로 목소리를 가질 수 없는 존재로 배제되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혁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마지막 탈출구로 등장한다. 그러나 디킨스는 혁명을 무조건적인 해방의 서사로 그리지 않는다. 혁명은 억압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지 못할 경우 또 다른 혼란과 폭력을 낳는다. 소설 속 파리의 모습은 기존 체제가 붕괴된 이후의 공백 상태를 보여주며, 민중의 분노가 방향을 잃고 집단적 광기로 전이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혁명은 정의를 요구하는 외침이지만, 그 자체로 정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디킨스는 혁명을 통해 사회 변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후의 책임과 윤리를 묻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폭력 : 변질과 자기 증식

이 작품에서 폭력은 혁명의 부산물이자 동시에 혁명을 잠식하는 요소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억압에 대한 정당한 저항으로 시작된 폭력은 점차 목적을 상실하고, 복수와 응징 자체가 목표가 되는 단계로 변질된다. 단두대는 정의의 상징으로 등장하지만, 곧 무차별적인 처형의 도구로 기능하며 인간 생명의 가치를 소거한다. 디킨스는 폭력이 제도화되는 순간, 그것이 누구를 향하든 동일한 파괴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히 작품 속 민중의 폭력은 개인의 악의라기보다 집단 심리와 공포가 결합된 결과로 제시된다. 억눌려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되며, 개인은 군중 속에서 책임을 상실한다. 디킨스는 이 과정을 통해 폭력이 어떻게 ‘정당한 분노’에서 ‘무차별적 파괴’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보다, 폭력이 작동하는 구조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폭력을 단순히 비난하지 않지만, 그것이 반복될 때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붕괴되는지를 냉혹하게 제시한다.

정의 : 제도 너머의 인간적 선택

『두 도시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질문은 정의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실현되는가이다. 법과 제도는 혁명 이전에는 귀족의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이었고, 혁명 이후에는 군중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정의는 제도의 이름으로 호명되지만, 실제로는 인간 개개인의 존엄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 디킨스는 제도적 정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며, 진정한 정의는 구조가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책임에서 비롯된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시드니 카턴의 희생은 이러한 정의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는 법이나 혁명의 이름이 아닌, 타인을 살리기 위한 개인적 결단으로 자신의 삶을 내어놓는다. 이 선택은 체제를 정당화하지도, 폭력을 승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디킨스는 이를 통해 정의가 제도적 선언이 아니라 인간의 윤리적 실천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두 도시 이야기』는 혁명과 폭력을 모두 통과한 뒤에도 남는 질문, 즉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선택할 것인가를 독자에게 끝까지 남겨두는 작품이다.

결론적 해석: 혁명 이후에도 남는 인간의 책임

『두 도시 이야기』의 결말은 혁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귀족의 폭정은 무너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완성된 정의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폭력과 공포였다. 디킨스는 이를 통해 사회 구조의 변화만으로는 인간의 존엄과 정의가 자동으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혁명은 억압을 끊어내는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윤리적 사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혁명 이후의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폭력은 제도화되거나, 혹은 극복될 수도 있다.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정의를 거대한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가 아닌, 개인의 윤리적 결단 속에서 찾기 때문이다. 시드니 카턴의 희생은 역사적 흐름을 뒤집는 영웅적 행위라기보다, 혼란과 광기 속에서도 인간이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도덕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디킨스는 이를 통해 정의란 집단의 분노가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과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두 도시 이야기』는 혁명과 폭력의 역사 위에 인간이 어떤 선택을 남길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며, 그 질문은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