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은 전쟁이 오지 않는 요새에서 평생을 기다리다 늙어버린 장교 드로고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이 놓치고 있는 '현재'의 가치를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기다리며 오늘을 소모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기회와 영광을 기다리다 정작 삶 자체를 놓쳐버린 한 인간의 비극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기다림의 비극: 현재를 미루는 인간의 심리
주인공 드로고는 요새에 부임하면서 "조금만 있다가 떠나면 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곳을 임시 거처로 여기며, 진짜 인생은 나중에 시작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심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합니다. "조금만 더 준비되면", "조금만 상황이 나아지면", "이번만 넘기면"이라는 말로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를 유예합니다. 드로고의 기다림은 점점 그의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그는 더 이상 오늘의 햇빛, 동료의 얼굴, 자기 몸의 변화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모든 감각은 '언젠가 올 사건'을 향해 조율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다림이 희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재를 비워버리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드로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심히 기다렸습니다. 문제는 그 기다림이 그의 삶을 실제로 살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 기다림의 구조가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자기 마취의 형태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현재의 불만족을 정당화하고, 행동하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드로고는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살지 않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게으름이나 나태함이 아니라, 의미 있는 순간을 위해 현재를 유보하는 적극적인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적극성이 역설적으로 삶의 소모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시간의 잔인함: 조용히 늙어가는 인간의 방식
『타타르인의 사막』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시간의 묘사 방식입니다. 드로고는 어느 순간 갑자기 늙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조금씩, 아주 조용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합니다. 오늘과 어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몇십 년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이 구조는 현실적이면서도 섬뜩합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이 망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언제 이렇게 됐지?"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드로고는 늘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동시에 "아직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이기도 합니다. 부차티는 시간의 잔인함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시간은 인간을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다만 가만히 옆에 서 있다가, 인간이 스스로를 미루는 동안 전부 가져가 버립니다. 하고 싶었던 일, 말하고 싶었던 말, 미뤄둔 선택들이 쌓이면 결국 삶의 방향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드로고는 몸으로 증명합니다. 이 소설이 무서운 이유는, 악인이 없는데도 인생이 무너진다는 점입니다. 시간의 적은 전쟁도, 요새도, 상관도 아닙니다. 적은 바로 '나중에 하자'는 태도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미루기 문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준비,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며 행동을 미룹니다. 하지만 그 사이 시간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를 변화시키고 노화시킵니다. 드로고의 비극은 그가 나쁜 사람이거나 게으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지금을 살지 않고 미래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의미 있는 삶: 사건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인생
드로고는 평생을 단 하나의 순간을 위해 준비합니다. "적이 나타나고, 내가 활약하고, 의미 있는 장면이 오는 순간"을 위해서입니다. 그는 자기 인생의 가치를 오직 그 사건 하나에 걸어둡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의 시간은 모두 무의미하다고 스스로 정의해 버립니다. 이 사고방식은 현대인의 목표 지향적 삶의 방식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이 일만 끝나면", "이 목표만 이루면"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드로고는 결국 병들고, 늙고, 쓸모없어졌다고 여겨질 때에서야 요새를 떠납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닫습니다. 자신의 인생 대부분이 '대기실'에서 사라졌다는 것을요. 이 장면은 깊은 허탈감을 안겨줍니다. 드로고는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선택하지 않았고, 살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기다림 속에서 말입니다.『타타르인의 사막』은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네 인생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인생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는가?" 이 질문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기회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의미 있는 삶은 거대한 사건 하나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과 현재를 사는 태도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드로고의 삶은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타타르인의 사막』은 조용한 소설이지만, 메시지는 잔인할 정도로 선명합니다. 기다림은 희망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삶을 마비시키는 가장 우아한 방식일 수 있습니다. 드로고는 인생을 낭비한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미뤄온 사람입니다. 이 작품이 던지는 가장 무서운 질문은 "당신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느라, 지금의 삶을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입니다. 큰 사건이 없어도 인생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이 작품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는다면, 인생은 결국 기다림 속에서 끝난다는 진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