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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리뷰 : 죽음, 삶, 성찰

by 토끼러버 2026. 1. 17.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관련 사진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처음에는 차갑고 건조한 이야기처럼 시작되지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의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 나 역시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때는 한 러시아 관리의 죽음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몇 장을 넘기자, 이 소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불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반 일리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고, 규범에 어긋나지 않게 성실히 살아왔다. 그런데도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기 삶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 장면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톨스토이는 죽음을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을 속이며 살아왔는지를 들춰낸다. 이 소설은 읽는 이를 위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독자를 성찰로 이끄는 방식이다.

죽음: 외면해 왔던 진실이 한순간에 덮쳐오는 순간

작품은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곳에는 진짜 슬픔보다 계산과 거리감이 가득하다. 동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그로 인해 생길 인사 이동과 자신의 이익을 먼저 떠올린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묘하게 숨이 막혔다. 인간의 죽음조차 사회 안에서는 하나의 ‘사건’이나 ‘변수’로 처리된다는 사실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나 또한 혹시 누군가의 죽음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 적은 없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정작 이반 일리치 자신도 처음에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병을 사소한 문제쯤으로 여기며 곧 나을 것이라 믿으려 한다. 그러나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밤마다 찾아오는 불안은 그를 잠 못 들게 만든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인간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죽음을 부정하려 하는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죽음은 늘 남의 일 같지만, 막상 내 일이 되면 모든 확신은 무너진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공포를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가 그 공포를 더 생생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읽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책을 덮고 싶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삶: 남들처럼 살았을 뿐인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이반 일리치의 삶은 겉으로 보면 성공의 전형이다. 안정된 직업, 체면 있는 결혼, 사회적 인정까지 그는 ‘잘 산 인생’의 조건을 모두 갖춘 인물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그의 삶이 얼마나 남의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삶이었는지 점점 분명해진다. 그는 진짜로 무엇을 원했는지 묻지 않았고, 대신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규범에 자신을 맞췄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문득 내 삶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 역시 얼마나 자주 남들의 기대에 맞춰 선택해 왔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에 걸린 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이상한 허무감에 빠진다. 열심히 살았다고 믿었는데, 막상 돌아보니 진짜 살아 있었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 거의 없다. 이 장면을 읽으며 마음이 묵직해졌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지만, 정작 나 자신과 제대로 마주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를 특별한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인물이기에, 독자는 쉽게 그에게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 무섭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성찰: 고통 속에서야 비로소 떠오르는 진짜 질문

이반 일리치의 성찰은 평온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억지로 끌려 나오듯 시작된다. 가족들은 그의 고통을 불편해하고, 의사들은 형식적인 말만 반복한다. 그는 점점 더 혼자가 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지 다시 느끼게 된다. 아플 때 가장 힘든 것은 몸보다도, 아무도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이반 일리치는 그 사실을 몸으로 겪는다. 그는 밤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삶은 정말 옳았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반성이 아니라, 삶 전체를 뒤흔드는 고통스러운 성찰이다. 그는 자신이 평생 동안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사실은 사회가 만들어준 틀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해서 이 길을 걸어왔는가, 아니면 그냥 흘러온 것인가. 톨스토이는 성찰을 위로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진짜 자신을 만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통증으로 그린다.

결론: 늦게라도 진실을 마주한 인간의 마지막 용기

이반 일리치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과 함께, 그는 처음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두려움 대신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 장면을 읽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슬프면서도 따뜻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그는 끝내 인간다운 순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끝까지 배운다는 말이 있다면, 이반 일리치는 죽음 직전에야 그 말을 증명한 인물일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에 관한 소설이지만, 사실은 지금 살아 있는 우리에게 더 강하게 말을 거는 작품이다. “당신은 언제 삶을 돌아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던진다. 병에 걸리고 나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잃고 나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말이다. 이 소설은 독자를 다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읽고 나면 예전처럼 무심하게 살 수 없게 만든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하나의 문학이 아니라, 하나의 인생 질문서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