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진건의 「고향」은 한국 근대문학이 식민지 현실을 본격적으로 인식하고, 그 현실이 개인의 삶과 인간성에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를 사실주의적 시선으로 기록한 대표작이다. 이 작품에서 ‘고향’은 더 이상 회귀와 위안의 장소가 아니라,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붕괴된 삶의 조건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으로 제시된다. 작가는 개인적 향수나 감정적 비탄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구조가 인간을 어떻게 빈곤과 무력 상태로 몰아넣는지를 절제된 문체로 드러낸다. 「고향」은 가난한 개인의 불행을 묘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작품은 왜 그러한 불행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묻는 구조적 질문을 던지며, 식민지 조선 사회의 현실을 증언하는 문학적 기록으로 기능한다.
식민지 현실
「고향」에서 식민지 현실은 단순히 시대를 설명하는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절대 조건으로 작동한다. 화자가 오랜만에 찾아간 고향은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따뜻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생기를 잃고, 변화의 가능성마저 차단된 정체의 공간으로 변모해 있다. 논밭은 황폐해지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간다. 이 풍경은 자연적 쇠락이나 우연한 불운의 결과가 아니라, 식민지 수탈 구조가 장기간 누적된 결과임을 암시한다. 현진건은 식민지 현실을 직접적으로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변화된 고향의 풍경과 인물들의 삶의 상태를 차분히 병치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그 원인을 추론하게 만든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작품의 현실감을 더욱 강화한다. 식민지 현실은 폭력적인 사건이나 극적인 충돌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너무도 일상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어느 순간부터는 문제로 인식조차 되지 않는 상태에 이른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식민지 현실의 특징은 ‘체념’이다. 인물들은 자신의 처지를 분노하거나 저항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과 몰락을 개인의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여력조차 상실한 상태다. 이는 식민지 지배가 단순히 경제적 수탈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사고와 감정까지 지배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현진건은 이러한 체념의 분위기를 통해 식민지 현실의 본질적 폭력성을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이 현실을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든다.
빈곤
「고향」에서 빈곤은 단순히 생활이 어려운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구조적으로 제한하고, 존재의 방향 자체를 왜곡시키는 총체적 조건으로 제시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가난 때문에 선택의 폭을 잃고,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가능성마저 박탈당한다. 이때 빈곤은 개인의 무능이나 나태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강제한 현실로 나타난다. 특히 화자의 친구가 겪는 몰락은 빈곤의 구조적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특별히 타락하거나 도덕적으로 실패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시대의 조건 속에서 점점 밀려나고, 결국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인물이다. 현진건은 이 과정을 감정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친구의 몰락은 조용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빈곤이 얼마나 잔인하면서도 일상적인 폭력인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빈곤은 인간의 내면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가난한 인물은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며, 점점 타인과의 관계를 회피한다. 그는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태를 숨기려 한다. 이로 인해 빈곤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 인간을 고립시키고 침묵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현진건은 이러한 빈곤의 심리적 효과를 세밀하게 포착함으로써, 가난이 인간의 존엄과 관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인간
「고향」이 궁극적으로 집중하는 지점은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로 남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누구도 영웅적이지 않으며, 현실을 극복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현진건은 바로 이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식민지 현실의 잔혹함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인간은 의지와 노력만으로 삶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 의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이 작품 전반에 걸쳐 제시된다. 화자는 친구를 바라보며 연민과 거리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는 친구의 처지를 이해하고 안타까워하지만, 동시에 그 현실에 깊이 개입하지도 못한다. 이 장면은 개인적 선의가 구조적 빈곤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진건은 인간의 도덕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도덕적 감정이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상황을 냉정하게 보여줄 뿐이다. 결국 「고향」의 인간은 패배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패배는 비굴함이 아니라, 시대의 폭력을 증언하는 결과다. 현진건은 무너진 인간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현실을 만든 사회 구조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작품은 희망적인 결말이나 위안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끝까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바로 이 점에서 「고향」은 감상적 소설이 아니라, 한국 근대문학이 남긴 가장 정직하고 치열한 인간 기록으로 평가된다.
결론
현진건의 「고향」은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한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소진시키고 침묵하게 만드는지를 집요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고향은 더 이상 정서적 안식처가 아니며, 인간이 다시 돌아가 회복할 수 있는 원형적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고향은 식민지 수탈 구조가 가장 깊숙이 스며든 장소로서, 빈곤과 체념이 일상화된 현실의 축소판으로 제시된다. 현진건은 이 공간을 통해 개인의 몰락이 결코 개인의 책임이 아님을 분명히 하며, 사회 구조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특히 이 작품이 지닌 문학적 힘은,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작가는 독자에게 위로나 희망을 제공하지 않으며, 인간의 선의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끝까지 직시하게 만든다. 이는 패배주의가 아니라, 현실을 왜곡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태도에 가깝다. 「고향」은 인간이 무너지는 과정을 감정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 붕괴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기록함으로써 문학이 수행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고향」은 과거의 기록으로만 남지 않는다.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빈곤, 개인의 무력감은 여전히 다른 형태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진건이 그려낸 인간의 체념과 침묵은 여전히 낯설지 않으며, 오히려 현대 사회의 또 다른 얼굴처럼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고향」은 읽고 나서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읽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문제작이다. 이 작품이 한국 근대문학의 고전으로 남은 이유는, 그것이 특정 시대의 고통을 넘어서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묻고 있기 때문이다.